이 모든 이야기는 아주 이상한 재앙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북아메리카와 다른 대륙들은 과거에 이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해침을 경험했다. 지구 역사상 최대의 해침은 약 1억 년 전인 백악기에 일어났다. 그때, 북아메리카에는 북쪽, 남쪽, 동쪽에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결국 남북으로는 북극해에서 멕시코 만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멕시코 만에서 뉴저지 주에 이르는 해안 평야를 뒤덮은 폭 1600km의 내해가 생겼다. 해침이 가장 심하게 진행되었을 때, 북아메리카의 약 절반이 바다 아래에 잠겨 있었다. 나머지 전 세계도 마찬가지로 해수면이 크게 상승하였다. 영국 제도는 높이 솟은 산꼭대기만 물 위로 여기저기 나와 있을 뿐, 모두 물아래에 잠겼다. 남유럽도 옛날의 고원지 대만 물 위로 나와 있었다. 바다는 중부 유럽의 긴 만으로 밀고 들어가 고원 지대도 물아래에 잠기게 했다. 바다는 아프리카에도 밀고 들어가 사암층을 퇴적시켰다. 훗날 이 사암층이 풍화되면서 사하라 사막의 모래가 되었다. 물 밑에 잠긴 스웨덴에서 내해가 러시아로 흘러들어 가 카스피 해를 덮고 히말라야 산맥에까지 이르렀다.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시베리아 등지도 일부가 물에 잠겼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나중에 안데스 산맥으로 솟아날 지역이 바다 밑에 잠겼다.
그 세세한 경과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 사건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일어났다. 약 4억 년 전의 오르도비스기에는 바다가 북아메리카의 절반 이상을 뒤덮었고, 대륙의 경계를 알려 주는 큰 섬 몇 개와 내해의 작은 섬들만이 여기저기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데본기와 실루리아기에 일어난 해침의 규모 역시 이에 못지않게 광범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해침의 양상은 조금씩 달랐고, 대륙 중 언젠가 그러한 얕은 바다 밑에 놓이지 않은 곳이 남아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여러분은 바다를 찾기 위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옛날에 바다가 머물렀던 흔적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륙으로 1500km쯤 들어간 곳이라 하더라도, 마음속의 눈과 귀에 먼 과거의 그 유령 같은 물결과 파도 소리를 재현시켜 주는 증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어느 산에 올랐을 때, 나는 하얀 석회암 위에 앉아 거기서 수조 개나 되는 아주 미세한 해양 동물 껍데기 모양을 발견했다. 이들은 한때 이곳을 뒤덮고 있던 대양 속에서 살다가 죽어 갔고, 그 석회질 유해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러고 나서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것은 암석으로 변했고, 바다는 후퇴했다. 그러고 나서 또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지각이 비틀리면서 암석이 위로 솟아올라 긴 산맥의 기반이 된 것이다. 플로리다 주의 에버글레이즈 대소 택지 깊숙한 곳에서 나는 갑자기 바다의 느낌이 밀려드는 것에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바다와 똑같은 편평함, 무한한 공간, 하늘과 그 위에서 움직이고 변하는 구름이 이곳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밟고 서석질 바닥 여기저기에 울퉁불퉁한 산호암이 삐죽 나와 있고, 그것이 비교적 최근에 따뜻한 바다 밑에서 만들어진 산호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궁금증이 풀렸다. 지금은 그 바위는 풀과 물로 살짝 덮여 있다. 그러나 이 땅이 아래에 있는 바다의 단을 덮고 있는 아주 얇은 층에 불과하며, 언제라도 그 과정이 역전되어 이곳이 다시 바다로 변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사방에서 전해져 왔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육지에서 과거에 그곳에 바다가 존재했던 것을 느낄 수 있다. 히말라야 산맥 해발 6000m 지점에서도 바다에서 만들어진 석회암이 노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석회암은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덮고 서남아시아까지 뻗어 있던 따뜻하고 맑은 바다의 존재를 말해 준다. 그것은 5000만 년 전의 일이었다. 그 바다에는 화폐석이라는 큰 원생동물이 수많이 헤엄쳐 다녔는데, 이것들은 죽으면서 화폐석 석회암층을 두껍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고대 이집트인은 이 암석 덩어리로 스핑크스를 조각했고, 다른 장소에서 같은 암석을 잘라와 피라미드를 지었다.
도버 해협의 유명한 백악 절벽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큰 해침이 있었던 백악기의 바다에 침전된 백악으로 만들어졌다. 백악은 아일랜드에서 덴마크를 거쳐 독일까지 뻗어 있고, 러시아 남부에서 가장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다. 백악은 유공충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바다 동물의 껍데기로 만들어진다. 그 껍데기들은 미세한 결을 가진 탄산칼슘이 시멘트 작용을 하여 서로 들러붙는다. 중간 깊이의 대양 바닥의 넓은 지역을 뒤덮고 있는 유공충 연니와는 대조적으로, 백악은 얕은 물에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백악의 결이 아주 깨끗한 것으로 보아 주변의 땅은 필시 사막이었고, 거기서 작은 물질이 바다 쪽으로 운반되었을 것이다. 바람에 의해 운반된 석영 모래알이 백악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은 이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특정 깊이에서 백악에는 부싯돌 단괴가 자리 잡는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백악기 바다의 유물인 부싯돌을 캐내어 무기나 연장으로 사용했고, 불을 피우는 데에도 사용했다.
자연의 경이 중에는 한때 바다가 육지를 뒤덮으면서 퇴적물을 남겨놓고 다시 후퇴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켄터키주의 매머드 동굴은 천장 높이가 75m나 되는 방들이 딸린 지하 통로가 수십 km나 뚫려 있다. 동굴은 고생대에 형성된 엄청나게 두꺼운 석회암층이 지하수에 녹아 만들어졌다. 마찬가지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탄생한 이야기도 북극해의 거대한 만이 멀리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대륙에까지 이르렀던 실루리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계 지역이 낮아 내해로 운반되는 퇴적물이나 실트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그 물은 비교적 맑았다. 그 바다에는 백운암이라 부르는 단단한 암석층이 퇴적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캐나다와 미국 국경 근처에 기다란 벼랑을 형성하게 되었다. 수백만 년 후, 빙하가 녹은 물이 절벽 위로 흘러내려왔고, 백운암 밑에 있던 부드러운 셰일을 깎아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깎인 암석이 계속 빠져나가면서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계곡이 생겨나게 되었다.
비록 내해는 모두 초기부터 대양의 물 대부분이 모여 있던 중앙 분지에 비하면 수심이 얕은 편이었지만, 그중 일부는 그 당시의 세계에서 아주 크고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것은 깊이가 대륙붕의 가장자리와 비슷한 180여 m나 되었다. 거기에 흐른 해류의 패턴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종종 열대 바다의 따뜻한 물을 멀리 북쪽 땅까지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예컨대, 백악기에는 빵나무, 육계나무, 월계수, 무화과나무 등이 그린란드에서도 자랐다. 대륙들이 섬들의 집단으로 크기가 크게 줄어들었을 때에는 더위와 추위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대륙성 기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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